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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야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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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2019 시즌 키움 히어로즈 투수진 분석 (선발, 불펜) (2019년 5월 23일이 분석의 기준 시간임을 알려드립니다) 선발 투수진 1. 브리검, 최원태 브리검과 최원태가 활약을 해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브리검은 2년 연속 많은 이닝수를 던졌기에 이에 올 시즌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최원태도 2017, 2018 두 시즌 모두 정규 시즌 막판에 부상으로 드러누웠기에 브리검과 최원태에 대해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 2. 요키시 새로운 용병이라는 점과 한국 프로야구에서의 첫 시즌을 보내게 되는 요키시이기 때문에 실력적인 면과 한국 야구에 적응할 수 있느냐 두 가지 모두 의문점이 있었다. 리그를 씹어 먹는 듯한 활약은 아니지만 나름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어 히어로즈 선발진의 한자리를 충실히 채워 주고 있다.​ 3...
키움 히어로즈 장영석, 만년 유망주의 꼬리표를 드디어 뗄까? 프로 데뷔와 만년 유망주 꼬리표 장영석은 부천고등학교 시절 팀의 4번 타자와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였으나 당시 부천고등학교의 전력이 너무 약해 대회에서는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다. 하지만 2008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우승하였다. 이를 본 당시 히어로즈 박노준 단장은 장영석을 신인 2차 지명 1라운드로 장영석을 지명하여 히어로즈 야구단에 입단하게 된다. 이때는 투수 신분으로 입단하였다. 데뷔 첫 시즌인 2009년, 타자로 전향하여 시작한 장영석은 남다른 파워를 보여주어 히어로즈 구단과 팬들의 기대를 받으며 거포로 성장할 거라고 믿었었다. 그렇지만 구단과 팬들의 기대감을 받은 부담감 때문인지 간간이 파워는 보여 주었지만 타격 컨택 능력과 선구안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두산 베어스 야구단의 역사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김인식 감독 체제로의 첫 시작인 1999 시즌은 시작 전 팀명이 바뀌면서 시작된다. 1999년 IMF로 인해 두산 그룹은 OB 맥주 매각을 추진했고 이로 인해 베어스 야구단 명칭을 두산 베어스로 바꾸게 된다. 이렇게 1999 시즌이 시작되었고 이 시즌 두산은 우동수 트리오(우즈, 김동주, 심정수)의 활약에 힘입어 드림리그 1위, 전체 승률 1위를 차지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매직리그 2위인 한화에게 패배하며 탈락하였다. ​ 2000 시즌은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현대 유니콘스에게 밀려 드림리그 2위를 기록하였고 플레이오프에서 매직리그 1위 LG를 꺾고 현대와 한국 시리즈를 펼치게 된다. 1~3차전을 내주었지만 4~6차전을 연속으로 이기며 한..
프로야구 OB 베어스 야구단의 역사 프로 야구의 시작과 OB 베어스의 창단 OB 베어스는 두산 베어스의 전신으로 1982년 시작된 프로 야구와 함께 창단된 프로 야구 원년 구단이다. OB라는 팀명이 된 이유는 두산 그룹이 자사 맥주인 OB 맥주를 붙였는데 그 당시에는 두산이라는 명칭보다는 OB라는 명칭이 더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현재 두산 베어스 야구단이 프로 야구의 시작과 함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 프로 야구 원년과 초창기를 호령한 베어스 1982년 1월,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야구단으로 창단되었다. 연고지는 본래 충청도였으나 모기업이 서울 종로에 있던 베어스 구단은 서울로 입성하기 위해 연고지 변경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서울에는 이미 MBC 청룡(현 LG 트윈스)가 선점했기에 이는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자 ..
키움 히어로즈 서건창, 한국프로야구 최초 200안타를 기록한 사나이 히어로즈로 오다... 모두가 알다시피 서건창은 2008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고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자신과 동생을 홀로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를 보며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그 해 LG 트윈스에 신고 선수로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1군에서 1경기 1타석만 소화한 뒤 방출되었고 경찰 야구단에도 탈락하게 되어 현역병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된다. 군 복무를 마친 2011년, 광주 일고 시절 은사인 김선섭 감독이 히어로즈에 추천을 해주어 히어로즈의 입단 테스트를 보게 되었다. 당시 히어로즈의 타격 코치였던 박흥식 코치는 서건창이 실력에서는 많이 부족하지만 눈빛이 너무 간절했다며 그 눈빛 하나만 보고 딱 1년만 써보자고 히어로즈 프런트에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서건창은 신고 선수로 히어로즈에 ..
영웅 군단의 4번 타자, 키움 히어로즈 박병호 LG 트윈스에서 히어로즈로의 트레이드 성남고 시절, 고교 야구에서는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당시 오른손 거포에 갈증을 느끼던 LG트윈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다. 하지만 어느 팀에나 한 명씩은 꼭 있는 2군 본즈라 불리며 이상하게도 1군에만 오면 본인의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였다. 1군에만 올라오면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에 LG도 성적의 압박감에 그를 계속 지켜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박병호는 이렇게 유망주의 꼬리표를 달은 채 선수 커리어가 끝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 기한 마지막 날 히어로즈로 트레이드 되며 박병호 본인의 커리어와 히어로즈 팀의 운명 모두가 바뀌었다. 당시 히어로즈의 감독이던 김시진 감독의 전폭적인 지..
한국 프로야구 (키움)히어로즈 야구단의 역사 (현대 유니콘스 및 현대 유니콘스 이전 제외) 서울 히어로즈의 창단과 이장석의 선수 장사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가 확정되면서 현대 야구단을 인수하겠다는 STX, 농협, KT 등의 대기업들이 KBO와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내용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부담감을 느낀 기업들은 모두 손에서 뗐으며 이로 인해 KBO는 야구 팬들의 질타를 받는다. 7개 구단으로의 리그 운영은 절대 불가 방침을 내렸던 KBO는 투자 회사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이사 이장석과 접촉하게 된다. 이장석은 구단의 흑자 모델을 주장하며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후 재창단의 방식으로 서울 히어로즈 야구단을 창단하게 된다. 메인 네이밍 스폰서 외에 수많은 서브 스폰서를 바탕으로 모기업의 지원 없이 대한민국 최초의 자생 구단을 주장하였으나 수많은 야구 관계자와 야구 팬들에게 ..
프로 야구 현대 유니콘스의 역사 현대 그룹의 야구단 창단 KBO 리그와 다르게 제 2의 야구 리그를 설립하기 위해 현대 피닉스를 창단하고 당시 신인 선수들을 거액의 계약금으로 유혹하여 KBO 리그가 아닌 사실상 실업 리그에 소속된 현대 피닉스로 대거 영입하였다. 하지만 제2의 야구 리그를 설립한다는 계획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국 태평양 야구단을 인수하며 KBO 리그에 뛰어 들었고 이로 인해 현대 피닉스와 현대 피닉스로 입단하였던 유망주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현대 유니콘스가 창단되고 1996 시즌부터 리그에 참여하게 된다. ​ 1996 시즌 ~ 1999 시즌 1996 시즌은 창단 시즌으로 신생팀으로 참여하였으나 이 시즌에 바로 준우승을 해 버린다. 리틀 쿠바라는 별칭을 가진 신인 박재홍의 활약과(최초의 30 ..